멸종위기 픽셀해파리
[픽셀해파리 멸종위기개체 지정]
1980~90년대에 출몰하기 시작한 픽셀해파리(학명: Pixel Scyphozoa Goette)의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감소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통창 가공기법의 보편화를 지목하고 있는데요. 아직도 1기 신도시와 노도강, 마용성 등지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나보실 수 있다고 합니다. 픽셀해파리의 서식지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일부 단체들은 리모델링을 하지 않고 재개발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픽셀해파리는 주로 현관문과 거실 사이, 주방 상부장, 안방 문짝의 유리면에 서식합니다. 낮에는 햇빛을 받아 무지갯빛으로 산란하며, 밤에는 거실 형광등 불빛을 머금고 은은하게 발광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몸체가 정사각형 격자 단위로 이루어져 있어 멀리서 보면 해상도 낮은 바다를 떠다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데, 이것이 '픽셀해파리'라는 이름의 유래입니다. 천적은 인테리어 업자와 '올수리' 매물을 선호하는 매수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샷시 전문가 김창호(KCG 대표이사) 씨를 모셨습니다. 해파리 감소의 원인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고방 유리'는 과거 1980~90년대에 인기를 누렸던 무늬 유리입니다. 격자 무늬로 제작되어 모자이크 줄무늬 형태를 띠는 것이 특징인데요. 우드 마감재, 주방 가구, 도어 등에 활용되어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빛은 통과시키는, 픽셀해파리가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됩니다. 문제는 2000년대 이후입니다. 투명하고 넓은 통창이 '개방감'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을 장악하면서, 고방 유리는 철거 견적서 맨 윗줄에 오르게 됐습니다. 유리 한 장이 깨지면 같은 무늬를 구하지 못해 서식지 전체가 교체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전문가님이 보시기에 픽셀해파리 서식 환경이 얼마나 안 좋은 걸까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도심에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최근 레트로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늘면서 서식 환경이 조금은 보존되고 있습니다. 을지로나 성수의 카페에서 고방 유리를 일부러 수소문해 시공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고요.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현장의 목소리도 들어봤습니다. 1기 신도시의 한 주민은 "어릴 때 저 유리 너머로 어머니가 설거지하는 실루엣이 픽셀로 일렁이던 게 기억난다"며 "재건축 동의서에 도장을 찍으면서도 저 유리 앞에서는 잠깐 멈추게 되더라"고 전했습니다. 반면 인근 공인중개사는 "고방 유리가 있으면 '수리 안 된 집'으로 분류돼 호가에서 이천은 빠진다"며 냉정한 시장의 논리를 상기시켰습니다. 픽셀해파리의 생존이 향수와 시세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편 보존 단체들은 철거 현장에서 수거한 고방 유리를 소품용으로 재분양하는 '방류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원서식지로의 복원은 아니지만, 액자와 파티션의 형태로나마 개체군을 이어가겠다는 취지입니다.
밀레니엄 이전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픽셀해파리. 우리는 언제까지 이들을 볼 수 있을까요. 갈수록 높아져 가는 용적률과 더불어 빼곡해진 반사유리에, 픽셀해파리에게 보내야 할 작별의 편지가 비추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조성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