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길은 크고도 넓다
1.
유혹의 길은 크고도 넓다. 유혹의 시작엔 거리낌이 없고, 가는 길은 순탄하게 느껴진다. 판단이 필요하지 않기에, 매끄럽게 잘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넓다는 건 부딪힐 벽이 없다는 뜻이다. 벽이 없으니 속도가 붙고, 속도가 붙으니 잘 가고 있다고 착각한다. 사실은 아무것도 나를 막지 않는다는 것뿐인데.
하지만 그 끝에는 쭉정이가 된 자아만이 남는다. 그게 독인 줄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택하기에 마태복음에서는 그것을 크고도 넓은 길이라 표현한 것 같다.
본능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판단할 것이 가득한 좁은 길을 의식적으로 선택할 것이다. 좁다는 건 계속 어딘가에 걸린다는 뜻이고, 걸릴 때마다 멈춰서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마찰이 사람 모양을 깎는다. 그 길이야말로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이다.
요즘 나는 다양한 유혹 앞에 놓여 있다. 식욕과 미루기욕.
긴장을 오래 하다가 풀리면 생존 본능이 켜지듯, 허겁지겁 먹고야 마는 내 모습을 보면 참, 원시인 같다. 그 순간엔 판단이 없다. 넓은 길이라 그렇다.
미루기는 또 얼마나 심한지. "머리 좀 써볼까" 마음먹는 순간,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온다. 와우.
사람 되기 어렵다. 근데 사람 되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신 되기는 왜 이렇게 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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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믿는 대상으로서의 신이 붕괴된 시대. 이제 사람들은 각자 자기 세계의 신이 되었고, 신과 신이 충돌하는 라그나로크가 일어나고 있다.
신이 되는 건 넓은 길이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면 판단할 게 없다. 기준이 나니까, 나는 언제나 맞다. 그래서 편하다.
짬밥과 실력으로 차근차근 올라온 사람들은 이제야 겨우 전능감을 느끼려 하는데, 모든 게 갖춰진 환경에서 자라난 세대는 어릴 적부터 이미 전능감을 안고 자랐다.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그들의 자아는 좀처럼 건드려지지 않았다. 자아는 비대해지고,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되어 세상을 이해한다.
근데 비대한 것과 꽉 찬 것은 다르다. 쭉정이도 겉보기엔 알곡보다 크다. 건드려지지 않은 자아가 커지는 방식이 딱 그렇다. 부딪힌 적이 없으니 단단해질 일도 없었던 거고.
1번의 넓은 길 끝에 남는다는 그 쭉정이가 사실 이 얘기였던 것 같다.
신화에서는 거의 모든 신이 죽고, 세상은 멸망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충돌은 어떻게 끝날까? 구세대의 신과 신세대의 신 중, 어느 쪽이 살아남을까.
결말은 두 가지쯤 되는 것 같다. 라그나로크식이면 다 같이 죽고, 그리스식이면 세대교체로 끝난다. 기성의 신들은 조기은퇴라는 타르타로스에 봉인되고 신세대만 사회 올림푸스로의 사다리를 걷어차버린 채 살지도.
그러나 저러나 그건 어차피 빌딩 안에서의 그들만의 리그고 관찰당하는지도 모른 채, 매일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냥 살아간다. 신들이 죽든 말든 밭은 갈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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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저 신화들은 결국 그 시대의 구세대와 신세대가 충돌했던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새로울 게 없다. 크로노스는 아버지를 밀어냈고, 제우스는 크로노스를 밀어냈다. 매번 새로운 신이 등장했지만 매번 같은 이야기였다. 지금 벌어지는 일도 그 판본 중 하나일 거고.
나는 이걸 밖에서 구경하는 척하고 있지만, 사실 나도 내 세계의 신 노릇이 하고 싶다. 내 기준이 옳다고 믿고 싶고, 가능하면 아무것과도 부딪히고 싶지 않다. 남의 자아가 비대해지는 건 잘 보이는데 내 쪽은 잘 안 보이는 게 그 증거고.
다만 내 신전은 눈꺼풀 하나에 무너진다. "머리 좀 써볼까" 한 마디에 잠들어버리는 신이라니.
신들의 전쟁은 알아서들 하시라고 하고, 나는 오늘 밥 먹는 속도나 좀 줄여야겠다. 그게 지금 내가 실제로 고를 수 있는 유일한 좁은 길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