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에서 좌초된 선박이 담고있던 빙열가득한 고려청자에 대한 논의

태안에서 좌초된 선박이 담고있던 빙열가득한 고려청자에 대한 논의

국중박에 다녀왔다.

원래는 비엔나 작가들 전시를 보려고 했는데 매진이었다.
역시 사람들은 서양 미술 앞에서는 빠르다.
나는 느린 사람이라.. 아무튼 결과적으로 못 봤다.
대신 맞은편 전시관에서 하던 고려청자를 보고 왔다.

고려청자는 묘하다.
완전한 파랑도 아니고, 초록도 아니고, 회색도 아닌 그 어딘가.
바다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하고, 오래 식은 하늘 같기도 하다.
색이 선명하게 자기주장을 하지 않지만 오래 보게 된다.
비비드한 색은 “나 봐라” 하고 외치는데, 청자는 “볼 거면 보고” 하는 느낌이다.
조용한 사람이 갑자기 한마디 했을 때 더 크게 들리는 것같다.

설명을 보니 태안 바다 쪽에서 청자들이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쪽에서 배들이 자주 좌초돼서.. 왤까.. 그것도 궁금하지만 설명엔 없었다.

청자에서 제일 눈에 들어온 건 갈라짐이었다.
저걸 빙열이라고 한다.
얼음이 갈라진 것 같은 무늬.
근데 실제로 깨진 건 아니다.
겉은 매끈하다고 한다.
갈라져 있는데 만지면 매끄러운 상태.
부서질 듯 보이지만 단단한 상태.
이게 예뻤다.

보통 우리는 갈라진 것을 흠이라고 생각한다.
금이 갔다는 건 약해졌다는 뜻이고, 망가졌다는 뜻처럼 느껴진다.
근데 청자는 그 갈라짐 때문에 아름다움이 더 깊어진다.
완벽하게 매끈하기만 했다면 그냥 예쁜 그릇이었을 텐데,
그 안에 균열의 지도 같은 것이 있어서 오래 보게 된다.
마치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는데 안쪽에 지나온 시간의 결이 비치는 사람 같다.

재밌는 건 차를 마시면 그 금 사이로 찻물이 스민다고 한다.
겉은 매끈한데 안쪽의 갈라짐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청자는 자신의 균열을 숨기지 않는다.
아니,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방식으로 아름답다.
투명하게 드러나는 속안의 흠.
그런데 그 흠이 오히려 무늬가 된다.

세상은 자꾸 약점을 보이면 안 된다고 말한다.
여긴 정글이고, 틈을 보이면 물어뜯긴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 매끈한 척한다.
괜찮은 척, 단단한 척, 상처 없는 척, 흔들리지 않는 척.
근데 정말 아름다운 사람은 아무 흠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균열을 완전히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갈라진 자리가 있다는 건 그만큼 고열을 버텼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청자도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흙이 불을 지나고, 식고, 수축하고, 버티면서 저런 색과 결이 생긴다.
사람도 비슷한 것 같다.
사랑, 실패, 수치심, 외로움, 일, 관계, 돈, 몸, 마음.
이런 고열을 지나면서 안쪽에 금이 간다.
근데 그 금이 꼭 파괴의 증거만은 아니다.
살아남은 증거일 수도 있다.
깨지지 않고 버텼기 때문에 생긴 무늬.
영광의 균열이다.

마음은 매끈하게.
투명하고 단단하게.
하지만 안쪽의 빙열까지 없애려고 하지는 말자.
그건 내가 버틴 시간의 무늬니까.
누군가는 그 흠들을 아름답게 봐줄 것이다.
전부가 아니어도 된다.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할 때가 있다.
“여기 금 갔네?”가 아니라
“여기 빛이 들어오네?”라고 보는 사람.

물론 완전히 부서졌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때는 금칠을 해야 한다.
청자들 중에도 금으로 수리한 것들이 있더라.
깨진 부분을 억지로 없는 척하지 않고, 오히려 금으로 잇는 방식.
상처를 지운 게 아니라, 상처가 지나간 자리를 더 빛나게 만든 것이다.
인간도 가끔은 그런 수리가 필요하다.
상담이든, 사랑이든, 휴식이든, 돈이든, 운동이든, 약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금을 발라야 할 때가 있다.

금융치료도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마음의 균열에도 가끔 예산이 필요하다.
내면아이도 카드값 앞에서는 어른이 된다.
그래도 웃긴 건, 돈만으로 다 고쳐지진 않지만 돈이 없으면 고치기 더 힘들다는 점이다.
이게 현대의 비극이다.

국중박.
그릇을 보러 갔는데 나를 보고 온 느낌이다.
푸르뎅뎅하고, 갈라져 있고, 그래도 깨진 건 아닌 상태.
겉은 어떻게든 매끈하게 유지하고 있지만, 안쪽에는 지나온 시간의 금들이 남아 있는 상태.

그래도 괜찮다.
갈라져 있지만 깨진 건 아니니까.
부서질 듯 보여도 단단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그 균열 사이로 찻물이 스미듯,
내가 지나온 시간도 내 색을 조금 더 깊게 만들 테니까.